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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22. 8. 28. 17:45

2022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상영작 : 아리랑의 노래 - 오키나와의 증언 (1991)



8월 28일 13:30분 관람. 이 영화를 만든 재일교포 감독 박수남은 먼저 자신이 왜 이국의 땅에서 태어났는지 묻는다. 그리고 한 번도 밟아본 적 없는 부모님의 나라로 가서 오키나와로 갔던 강제징용, 위안부 생존자들의 목소리를 듣는다. 1991년 작품이라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의 한국 풍경들이 스치고 지나간다. 시골 마을에서 과거의 기억을 반추하며 살아가는 노인들에게 학생운동을 하는 풍물패들이 찾아와서 공연을 하거나, 너무 급작스럽게 발전해서 번영의 길을 걷던 한국의 모습들이 스치고 지나간다.

처음에는 계속 아버지들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이들이 어떻게 징용되었는지,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한국인들이 참혹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어떻게 보았는지 알려준다. 한국인이 식량을 숨겨둔 동굴을 수색한 척후병 출신의 일본인은 그 당시에 죽은 사람에겐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위안부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이 영화의 기류가 변한다. 위안부 이야기를 하는 특공대원 출신은 여자들이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설렜었다며 피식 웃는다. 위안소의 위치를 설명하던 일본인 인터뷰이들은 위안소로 가는 길에 개천이 얼마나 예뻤는지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그래도 전쟁에서 살아남아서 고향에 갔으니 다행이라고 자화자찬을 한다. 한국 포로들과 징병자들은 쉬는 날마다 인솔자를 따라 위안소로 갔다고 증언한다. 어떤 병사들은 같은 동포라는 생각에 위안소로 들어가서 고향 이야기만 하다가 오지만, 어떤 병사는 '장난'을 쳤다고 웃었다. 그 증언을 한 80년대의, 경북 지역 어딘가에서 생존자로 살아가고 있는 한 할아버지는 자신도 위안소에 들어가서 '장난'을 쳤다고 머쓱하게 말을 잇는다. 이 증언들은 군국주의가 식민지 남성이 식민지 여성을 착취할 수 있는 구조를 형성했다는 불편한 사실을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는 오키나와의 한국인 위안소를 관리하던 '이케가미 도미요'라는 한국인 여성의 존재가 조금씩 언급된다. 영화 말미에 등장하는 일본군 장교 출신의 한 일본인은 위안소를 일본군이 운영한 거라고 하지만 사실은 이케가미 도미요가 자발적으로 한 것이라는 뉘앙스를 내비친다. 미군측에서 이케가미가 전쟁에 필요 없다고 판단해서 죽이려고 했을 때, 한국인 포로들은 처음에는 같은 한국인인 이케가미를 죽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케가미가 끌려온 한국인들에게 우호적이지 않고, '미군들에게 한국인이 얼마나 힘들게 전쟁에 참여하고 고생하고 있는지 말해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국인 한 사람은 이케가미를 죽이러 갔다고 한다. 이케가미는 후에 미군에 투항했다고 알려져 있다. 전쟁의 패색이 짙어질때쯤 하나 둘 일본군이 투항하려고 할 때 조선인들 역시 투항에 참여했다는 증언이 등장한다. 30명이 넘는 조선인 병사들은 투항을 위해 같이 있던 한국인 학도대 여성에게 네가 선봉에 서주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윽박질러서 그 여성은 옷을 전부 벗고 미군 기지 앞에서 수건을 흔들었다고 한다. 이 증언을 한 할아버지는 '사내답지 못했다'고 자신을 고백한다. 전쟁에 끌려간 '사내'들은 일본군에 의해 자국 여성을 착취했고, 투항을 위해 여성의 몸을 내세웠으며, 배를 곯지 않고 생존하기 위해 자신들에게 우호적이지 못한 한국인 여성을 증오했다. 원형에 가까운 경북 지방의 사투리로 읊어지는 '사내'들의 과거에서 젠더는 역사의 가장 미묘한 지점을 관통한다.

이 영화의 말미에서 박수남 감독은 전쟁 이후 오키나와인들에게 보살핌을 받았던 위안부 생존자 배봉기 할머니에 의해, 또한 위안소가 운영되었던 오키나와 자마미 섬의 풍경을 통해 식민지의 교차된 역사들을 조명한다. 이케가미가 자발적으로 위안소를 운영했다고 말한 일본군 장교는 말과 나라를 빼앗긴 류큐 왕국의 오키나와인들이 적의 포로가 되지 않기 위해 일본군에 의해 죽음으로 내던져진 것에 대해 '섬사람들은 정말 순수했고, 전쟁 시기 일본인의 모범이 되었다'라고 평가한다. 나는 이 대목에서 기시 마사히코의 '망고와 수류탄'을 떠올렸고, 기시의 기록에서 증언된 류큐인들의 삶에 대한 의지를 생각했다. 그들은 본토인과 엄격하게 구분되었지만 전쟁에서 죽음으로 투항할 때만 본토인임을 인정받고 있다. 지금 NHK에서 방송하고 있는 아침 드라마 '치무돈돈'에서 오키나와인이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멍청하게 묘사되고 있는지 생각하면, (나는 이 드라마가 어떻게 하면 오키나와를 가장 본토인의 시각에서 희화화할 수 있는지 보여준 위선적인 드라마라고 생각하고 있다) 오키나와인은 여전히 살아있을 때는 '본토'의 시선에서 편견을 입은 존재로 주변화되고 있다. 그리고 주변화의 또다른 변두리 속에 식민지 조선의 '사내'들과 '위안부의 몸'들이 존재한다. 오키나와의 크고 작은 섬들에는 여전히 교차된 식민지성의 흔적이 존재하고 있다. 전쟁은 생각보다 더 세밀한 식민지와 차별과 변두리의 잔해들을 남긴 채 여전히 기억과 기록 속에서 이어지고 있다. 여전히 일본은 전쟁을 더 이상 기억하지 않거나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려 하지만, 전쟁의 기억은 끝나거나 종결되지 않고, 후세대에 나비효과를 전하고 있다.

증언들 자체는 불친절하거나 연결성 없이 파편화되고 있지만, 증언의 발언과 가치 자체는 생생하게 남아있었다. 또한 '생존자'들을 미화하거나 그들의 숭고함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점에서, 주변의 언어들은 때때로 전혀 도덕적 가치를 부여받지 못하며 상호간의 폭력을 유발한다는 점에 관심을 둔다는 점에서 또 다른 주변 정체성을 드러낸 재일교포 여성 감독의 낡은 필름에서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하게 전달됐다. 올해 여성영화제에서 이 작품을 본 것은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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