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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23. 8. 24. 16:33

성폭력은 개인적이고 정치적이고, 일상적인 동시에 특징적인 사건이다

 

최근 언론에 이슈화되는 성폭력 범죄를 목도하며 사람들이 말한다. 세상이 무서워졌다, 거리에 다니기 무섭다. 한국이 언제부터 이렇게 치안이 불안한 나라였나? 하지만 되짚어보면 항상 성폭력 사건은 도처에 존재했다. 여성들은 계속해서 죽어나갔고, 한국 사회를 지배한 연쇄 강력사건의 이면에는 항상 성폭력이 존재했다. 연쇄살인사건은 사실 여성에 대한 혐오이자 연쇄 성폭력 사건이었고, 살아남은 여성들에게 자행된 '연쇄 강간 사건'이 개입되어 있었다. 한국 사회는 늘 여성들에게, 사회적 약자들에게 불안한 길거리였다.

 

이 지구사회는 성폭력을 포르노 영화로, 불행포르노로, 타인의 불행서사로 충분히 소비하고 곱씹어왔다. 물론 성폭력특별법의 제정과 개정의 과정, 가정폭력처벌법에서의 '아내폭력' 개념의 정립, 스토킹처벌법의 출발 등은 우리 사회가 단지 성폭력을 소비하고만 있지는 않았음을 증명한다. 하지만 '세상이 무섭다'는 말은 과거에는 행복했다는 정서적 착시에 불과할지 모른다. 과거에도 성착취는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존재했다.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면서 촬영은 성착취의 수단이 되었고 촬영 데이터는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성폭력 수단으로 복제된다. 그래서 청계천 상가에서 수많은 '남성 정체성'들이 불법촬영 비디오를 '빨간xxx'라는 이름으로 소비하고 그것을 과거의 추억으로 소비하고 웃었다. 돈과 유명세를 가진 이들은 클럽에서 약물에 의한 강간 사건을 저지르고 그 결과물을 전리품처럼 채팅방에서 돌려보았다. 또한 불법촬영 피해자의 무너진 삶을 포르노로 소비하며 조롱해왔다. 성폭력 피해자는 법정에서 가해자와의 결혼으로서 더럽혀진 정조를 회복하라는 판결을 선고받았다. 성폭력 처벌 법안의 골자는 '피해자에게 수치심을 주는 행위'라고 규정하고 있고 피해자가 수치심을 발현하지 않을 경우 성폭력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린다. 위계에 의한 성폭력과 성착취는 성별이 분리되지 않은 동성사회 연대 내에서도 충분히 자행되어 왔다. (감추어진 동성 간 성폭력 사건들이 존재해왔다는 것을 비로소 인식해왔을 뿐이다.)

 

갑자기 성별 경쟁에 도태된 이들의 열등감에 의해 성폭력이 특별한 사건으로 촉발되는 것이 아니다. 그 방식이 진화했을 뿐, 가장 아날로그적인 시대에도 성폭력은 사회의 관습으로 뿌리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성폭력의 대상으로 소비되는 여성-사회적 약자들이 나에게 자행되는 것이 폭력이자 착취라고 인식하는 속도가 빨라졌을 뿐이다. 세상은 예전에도 지금도 늘 위험하고 불안하다. 사회에서든, 조직에서든, 길거리에서든 자신이 불안하다고 인식하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어떤 지점에서 약자라고 위치지어지는 순간, 상하 관계의 하부를 차지하고 젠더 권력의 하위에 존재하는 순간 세상은 언제나 불안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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