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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25. 4. 9. 10:18마사 누스바움 - 시적 정의(Poetic Justice) (2013)
법철학자이자 윤리학자인 마사 누스바움이 문학적 상상력과 공적 판단이 갖는 관계에 대해 저술한 책이다. 누스바움은 공적 판단력이 필요한 사회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 특히 법조인들이 합리성만을 추구하여 문학을 소홀히 하고 독서를 멀리하게 되었을 때 이 사회가 직면하게 될 비윤리적 미래에 관해 비판한다. 누스바움은 이에 더해 ‘합리적 감정’이라는 개념을 제안하며 합리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배제된 ‘감정’의 영역이 법과 공공의 영역에서 얼마나 중요하게 작용하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소년재판과 가정폭력 판결을 맡아온 박주영 판사는 <어떤 양형 이유>에서 누스바움을 인용하며 판사와 재판 당사자가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했을 때 발생하는 비극을 비판하고 있다. 소년재판, 가정폭력, 성폭력은 특히 법리적 해석으로만 서술할 수 없는 영역 속에 있기에 더더욱 공적 판단의 권한을 쥔 이들의 ‘합리적 감정’에 의거한 가치판단을 필요로 한다. 또한 박주영 판사는 판결문이 형식적 측면을 넘어 양형 이유에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쓰여진, 사회가 추구하는 도덕적 가치가 반영되어야 한다는 소신을 밝히고 있다.
2025년 4월 4일, 대통령 탄핵 선고에서 발표된 판결문은 대중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작성되어 있었다.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의 비상 계엄이 얼마나 헌법에 위배됨과 동시에 국민의 안전을 위협했는지 설명하기 위래 최대한 합리적 감정에 의거한 언어를 채택했다. 문형배 재판관이 평소 꾸준히 독서를 즐기고 독후감을 작성했다는 비화가 전해졌을 문득 누스바움의 말을 떠올렸다. 그리고 빈약한 언어를 가진 재판관의 판결과 권력자들의 오염된 언어가 그 동안 이 세상을 너무 해롭게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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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24. 8. 31. 11:22누가 피해자인가 : 성폭력을 문제시했던 본질로 돌아가야 할 시점
https://n.news.naver.com/article/127/0000036275?lfrom=twitter
여성기자협회, 딥페이크 '기자방' 개설에 "즉각 수사해야"
한국여성기자협회가 여성 기자를 겨냥한 딥페이크 성범죄와 관련, “경악을 금할 수 없다”며 경찰이 즉각 수사에 착수해 범죄자들을 신속히 검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여성기자협회는 30일
n.news.naver.com
디지털 성범죄를 보도하는 여성 기자들과 방송인들에 대한 공격에 대한 기사를 공유하며, 새삼스럽게 느끼는 참담함을 기록해 둔다. 법조계가 성폭력 가해자 변론 시장을 열고, 여성 기자들의 보도가 성폭력의 타깃이 되고, 성폭력의 결과적 이득과 여성의 존재를 디지털화해서 재생산하는 사회에서 이제 이 사회가 성폭력을 왜 문제시했는지 다시 되돌아갈 때다. 여성을 향한 성적 억압의 표현이자, 성별 권력으로 강제하려는 움직임이자, 페미니즘 연구자와 활동가들에 대한 디지털 시대의 위협으로 이야기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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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24. 4. 10. 08:50마사 너스바움 M.Nussbaum - 혐오와 수치심 (Hiding from Humanity: Disgust, Shame, and the Law)
마사 너스바움 - 혐오와 수치심
법철학자이자 윤리학자인 마사 너스바움의 저서 ‘혐오와 수치심’은 사회 구성원들 사이를 관통하고 있는 ‘혐오’라는 감정이 본질적으로 어떻게 ‘수치심 disgrace’와 맞닿아 있는지 이야기하면서 혐오와 수치심이 법적 판단에 개입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수치심과 혐오 사이를 관통하는 상관관계에 대한 윤리적 성찰은 ‘혐오’가 지배적 감정으로 표출되는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필수불가결한 과정이 되었다.
너스바움이 정의하는 혐오는 오물이나 불쾌한 것, 그리고 모두는 근본적으로 동물이라는 대한 거부감과 연관이 있는데, 이는 오물을 배출하며 살아가는 동물성에 대한 혐오로 환원된다. 많은 문화권에서 ‘혐오의 대상’으로서 투사되는 존재들은 ‘더러움’이라는 감정과 연결된다. 자신의 더러움을 인식하는 동시에 타인이 뿜어내는 불쾌함 역시도 혐오로 환원하는 것이다. 여성, 유색인종, 하위계층, 성소수자들은 여러 문화권에서 ‘성기’ 즉 오물의 배출 혹은 이미 배출된 오물로서 혐오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너스바움은 특권계층들이 하위계층에 대한 우월적 지위를 확인하기 위해 동물성을 혐오와 결부시켜왔음을 지적하며 혐오를 통한 제노포비아가 단일 국가의 통치력을 강화하는 데 효과적인 수단이 되었다고 진단한다. 또한 혐오와 수치심이 법적 판단에 개입하는 것은 특정 계층이나 성별, 특성에 대한 부당한 법적 제재를 용인하게 만든다. 반대로 오물로 환원되는 대상과 객체들에게는 단순한 부끄러움을 넘어선 ‘수치심’을 부여함으로써 모든 인간이 가지고 태어날 수밖에 없는 동물적 속성이 부끄러우며 사회적 체면을 깎아먹는 것이라는 인식을 갖게 만든다. 혐오가 사회를 추동하는 기능이 되었다는 윤리학적 분석은 한국 사회에서 섹슈얼리티를 침해하는 성폭력이 오랜 시간 ‘수치심’과 연관되어 사회적, 법리적 감정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과도 관련이 있다.
하지만 너스바움은 '건설적 수치심'을 언급하며 스스로에게 수치심을 느끼고 성찰하는 건설적 성격이 타인에게 수치심을 부여하는 현상과 서로 연관을 맺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편으로는 모든 인간은 사회화되면서 수치심을 느끼면서 살 수밖에 없다는 상황적 필연성에 주목하지만, 수치심으로 형벌을 주거나 낙인을 찍고, 인위적으로 법적 제재를 가하는 것은 법으로 규정된 인간의 존엄성에 영향을 미친다. 수치심은 '발현'될 수 있지만 인위적으로 부여되는 것이 아니다.
수치심의 맥락적 속성은 인과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감정'에 대한 분석과도 연관이 있다. 서양철학의 역사는 이성과 감정을 서로 분리하여 이성과 합리성에 우월성을 부여해왔지만 사실 혐오와 차별, 통치성과 관련된 사회적 현상은 입증 불가능한 감정적 현상과 관련이 있다. 유아기의 행동들은 합리적 인과관계와는 거리가 멀지만 인간은 사회화되면서 수치심을 부여받아 사회인으로 성장한다. 남성들은 성장하면서 이상적인 남성성-맨박스Manbox를 수행할 것을 요구받지만 너스바움의 언급에 따르면 이 수행성은 남성성을 거부하고 싶거나 명확한 개념을 인지하지 못한 소년들에게 일정 이상의 수치심을 안긴다. ‘사회화’는 구성원들에게 수치심을 안김으로써 ‘정상적인 인간’으로 살아갈 것을 요구하면서 기능한다. 수치심은 현대를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맥락적 발현임과 동시에 정상성에 대한 요구이자, 정상 밖의 속성들을 낙인찍는 수단으로서 작용하고 있다. 그래서 너스바움의 ‘건설적 수치심’에 관한 질문은 수치심이 혐오로 환원되지 않는 사회화된 삶을 수행하는 데 있어 필요한 사회적 가치와 상호존중 윤리의 가능성과 깊은 연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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