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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23. 6. 20. 15:28

브러쉬 업 라이프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느낄 때, 다시 잠에 들 때 문득 생각한다. 나는 계속해서 가만히 서 있거나 앉아 있거나 움직였을 뿐인데 어린아이에서 어른이 되었다. 걷지도 못하던 아기는 걸을 수 있게 되고, 스스로 아무것도 할 줄 모르던 아이가 조금씩 삶에 필요한 능력치를 익힌다. 이 삶의 흐름 위에서, 나는 왜 지금의 내가 되었을까? 왜 나는 나라는 사람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을까? 나는 왜 지금의 전공과 직업을 선택하고 삶의 가치관을 선택하게 되었을까? 삶의 시간을 거꾸로 돌리면 나는 다른 선택을 하게 될까?

 

<브러쉬 업 라이프>라는 일본 드라마는 주인공이 계속해서 자신의 인생을 반복해서 살아가는, 인생 N회차의 과정을 그려낸다. 처음에는 지역 공무원이었던 주인공은 인생에서 맞닥뜨린 몇 가지 사건을 반추하며 저승에서 ‘인생 다시 살기를 선택한다. 그리고 주인공은 약사, TV 드라마 프로듀서, 의학 연구원, 비행기 조종사 등 여러 직업을 선택하고 살아간다. 이전 인생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철저한 준비와 크로스체크를 통해 자신과 주변인이 곤경에 빠지는 것을 막는다.

 

나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나도 인생을 다시 산다면 주인공처럼 철저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었다. 주인공은 이전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삶의 과오를 지워내기 위해 치열하게 다섯 번의, 도합 200년 이상의 인생을 산다. 물론 나 역시도 아주 자잘한 실수 정도는 다시 저지르지 않기 위해 노력해볼 순 있다. 하지만 나는 지금의 내가 되는 과정에서 새로운 선택지가 열릴 때 다른 길을 갈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는 인생을 다시 산다 해도 이전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날지 철저하게 기억하고 실수를 크로스체크할 자신이 없었다. 어쩌면 주인공이 인생을 반복하면서 만나는, 8회차 넘게 같은 인생을 반복하고 있는 후배 공무원 캐릭터가 주인공이 아닌 평범한 사람의 행동방식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인생을 반복한다 해도 나는 바꿀 수 있지만 주변은 바꿀 수 없다는 것, 과거의 몇 가지 사건들을 되돌리기엔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인생의 사건들도 많다는 점이다. <브러쉬 업 라이프>의 주인공에겐 갈등을 일으키는 가족이나 친구, 친척들이 없었다. 1989년생인 주인공은 당시 일본 사회를 지배한, 버블경제 붕괴와 경제불황의 영향도 받지 않고 하루하루 그 시대의 드라마와 노래를 기억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시대의 경제 불황이나 가계경제의 붕괴, 갈등을 일으키는 주변인들이 존재한다. 주인공의 삶에서 ‘브러쉬 업’ 할 것은 친구를 잃고 젊은 나이에 요절할거라는 두려움 뿐이다.

 

내가 나라는 사람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고 성장해오는 동안, 다시는 되돌리거나 맞닥뜨리고 싶지 않은 과거의 파편들이 삶의 도로 위에 펼쳐져왔다. 사람은 그렇게 고통스러운 파편들을 딛고 성장한다. 인생을 다시 살게 해 준다고 해도 바꿀 수 없는 수많은 세상의 흐름들 속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분명히 좌절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잠에 들 때까지, 인생을 다시 ‘브러쉬 업’하고 싶지는 않다는 결론을 내리며 또 하루의 시간을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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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22. 8. 28. 17:45

2022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상영작 : 아리랑의 노래 - 오키나와의 증언 (1991)



8월 28일 13:30분 관람. 이 영화를 만든 재일교포 감독 박수남은 먼저 자신이 왜 이국의 땅에서 태어났는지 묻는다. 그리고 한 번도 밟아본 적 없는 부모님의 나라로 가서 오키나와로 갔던 강제징용, 위안부 생존자들의 목소리를 듣는다. 1991년 작품이라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의 한국 풍경들이 스치고 지나간다. 시골 마을에서 과거의 기억을 반추하며 살아가는 노인들에게 학생운동을 하는 풍물패들이 찾아와서 공연을 하거나, 너무 급작스럽게 발전해서 번영의 길을 걷던 한국의 모습들이 스치고 지나간다.

처음에는 계속 아버지들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이들이 어떻게 징용되었는지,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한국인들이 참혹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어떻게 보았는지 알려준다. 한국인이 식량을 숨겨둔 동굴을 수색한 척후병 출신의 일본인은 그 당시에 죽은 사람에겐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위안부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이 영화의 기류가 변한다. 위안부 이야기를 하는 특공대원 출신은 여자들이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설렜었다며 피식 웃는다. 위안소의 위치를 설명하던 일본인 인터뷰이들은 위안소로 가는 길에 개천이 얼마나 예뻤는지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그래도 전쟁에서 살아남아서 고향에 갔으니 다행이라고 자화자찬을 한다. 한국 포로들과 징병자들은 쉬는 날마다 인솔자를 따라 위안소로 갔다고 증언한다. 어떤 병사들은 같은 동포라는 생각에 위안소로 들어가서 고향 이야기만 하다가 오지만, 어떤 병사는 '장난'을 쳤다고 웃었다. 그 증언을 한 80년대의, 경북 지역 어딘가에서 생존자로 살아가고 있는 한 할아버지는 자신도 위안소에 들어가서 '장난'을 쳤다고 머쓱하게 말을 잇는다. 이 증언들은 군국주의가 식민지 남성이 식민지 여성을 착취할 수 있는 구조를 형성했다는 불편한 사실을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는 오키나와의 한국인 위안소를 관리하던 '이케가미 도미요'라는 한국인 여성의 존재가 조금씩 언급된다. 영화 말미에 등장하는 일본군 장교 출신의 한 일본인은 위안소를 일본군이 운영한 거라고 하지만 사실은 이케가미 도미요가 자발적으로 한 것이라는 뉘앙스를 내비친다. 미군측에서 이케가미가 전쟁에 필요 없다고 판단해서 죽이려고 했을 때, 한국인 포로들은 처음에는 같은 한국인인 이케가미를 죽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케가미가 끌려온 한국인들에게 우호적이지 않고, '미군들에게 한국인이 얼마나 힘들게 전쟁에 참여하고 고생하고 있는지 말해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국인 한 사람은 이케가미를 죽이러 갔다고 한다. 이케가미는 후에 미군에 투항했다고 알려져 있다. 전쟁의 패색이 짙어질때쯤 하나 둘 일본군이 투항하려고 할 때 조선인들 역시 투항에 참여했다는 증언이 등장한다. 30명이 넘는 조선인 병사들은 투항을 위해 같이 있던 한국인 학도대 여성에게 네가 선봉에 서주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윽박질러서 그 여성은 옷을 전부 벗고 미군 기지 앞에서 수건을 흔들었다고 한다. 이 증언을 한 할아버지는 '사내답지 못했다'고 자신을 고백한다. 전쟁에 끌려간 '사내'들은 일본군에 의해 자국 여성을 착취했고, 투항을 위해 여성의 몸을 내세웠으며, 배를 곯지 않고 생존하기 위해 자신들에게 우호적이지 못한 한국인 여성을 증오했다. 원형에 가까운 경북 지방의 사투리로 읊어지는 '사내'들의 과거에서 젠더는 역사의 가장 미묘한 지점을 관통한다.

이 영화의 말미에서 박수남 감독은 전쟁 이후 오키나와인들에게 보살핌을 받았던 위안부 생존자 배봉기 할머니에 의해, 또한 위안소가 운영되었던 오키나와 자마미 섬의 풍경을 통해 식민지의 교차된 역사들을 조명한다. 이케가미가 자발적으로 위안소를 운영했다고 말한 일본군 장교는 말과 나라를 빼앗긴 류큐 왕국의 오키나와인들이 적의 포로가 되지 않기 위해 일본군에 의해 죽음으로 내던져진 것에 대해 '섬사람들은 정말 순수했고, 전쟁 시기 일본인의 모범이 되었다'라고 평가한다. 나는 이 대목에서 기시 마사히코의 '망고와 수류탄'을 떠올렸고, 기시의 기록에서 증언된 류큐인들의 삶에 대한 의지를 생각했다. 그들은 본토인과 엄격하게 구분되었지만 전쟁에서 죽음으로 투항할 때만 본토인임을 인정받고 있다. 지금 NHK에서 방송하고 있는 아침 드라마 '치무돈돈'에서 오키나와인이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멍청하게 묘사되고 있는지 생각하면, (나는 이 드라마가 어떻게 하면 오키나와를 가장 본토인의 시각에서 희화화할 수 있는지 보여준 위선적인 드라마라고 생각하고 있다) 오키나와인은 여전히 살아있을 때는 '본토'의 시선에서 편견을 입은 존재로 주변화되고 있다. 그리고 주변화의 또다른 변두리 속에 식민지 조선의 '사내'들과 '위안부의 몸'들이 존재한다. 오키나와의 크고 작은 섬들에는 여전히 교차된 식민지성의 흔적이 존재하고 있다. 전쟁은 생각보다 더 세밀한 식민지와 차별과 변두리의 잔해들을 남긴 채 여전히 기억과 기록 속에서 이어지고 있다. 여전히 일본은 전쟁을 더 이상 기억하지 않거나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려 하지만, 전쟁의 기억은 끝나거나 종결되지 않고, 후세대에 나비효과를 전하고 있다.

증언들 자체는 불친절하거나 연결성 없이 파편화되고 있지만, 증언의 발언과 가치 자체는 생생하게 남아있었다. 또한 '생존자'들을 미화하거나 그들의 숭고함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점에서, 주변의 언어들은 때때로 전혀 도덕적 가치를 부여받지 못하며 상호간의 폭력을 유발한다는 점에 관심을 둔다는 점에서 또 다른 주변 정체성을 드러낸 재일교포 여성 감독의 낡은 필름에서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하게 전달됐다. 올해 여성영화제에서 이 작품을 본 것은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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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20. 10. 10. 17:39

보이지 않는 여자들 : 편향된 데이터는 어떻게 세계의 절반을 지우는가



사피야 우노자 노블의 <구글은 어떻게 여성을 차별하는가?> 와 마찬가지로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우리가 사는 세계가 성별 불균형의 메커니즘을 가지고 구조화되어 있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캐럴라인 페레스가 제시한 ‘인비지블 우먼’의 개념은 노블이 가진 구글 검색엔진의 성편향적 세계관을 인식론적 측면에서 확장하고 있다. 즉 남성은 기본값이고, 여성은 예외 케이스로 취급해야 하는 세계의 작동 원리를 증명하는 것은 페미니즘의 과제였다. 페레스는 이 책에서 노동, 공공 서비스, 의료 등 다양한 측면에서 여성의 역할이 얼마나 축소되어 왔으며 여성이 어떻게 ‘자연스럽게’ 배제되었는지 설명하고 있다. 데이터와 합리성이 중요한 세계에서 여성은 의도적으로 배제되지 않는다. 결과론적으로 여성의 ‘예외적 위치’를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배제된 것이다.

이러한 작업의 가장 큰 맹점은 편향성을 증명하기 위해 주관성이 반영된 객관적 자료를 제시해야 한다는 데 있다. 그래서 많은 페미니스트 연구자들이 여성이 공공 서비스나 데이터마이닝에서 어떻게 배제되었는지 전지구적으로 증명된 통계가 없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즉 어떤 방식으로든 수집된 ‘객관적’ 자료들은 편향성에 대한 기대값과 근사값만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많은 여성들의 경험적 구술이 이 불균형한 세계를 증명해낼 수 있지만, 문제는 어디까지나 경험적 세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최근 여성들이 배제된 인터넷 세계의 성폭력이 갖는 집단 공동체적 특성, 특히 호모소셜리티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이 연구는 언제 완료될지 아무도 모르지만, 일단 마무리 시기를 내년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 연구의 가장 큰 장벽은 모든 증거와 관찰 자료들이 개인화되고 파편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의 많은 언어들, 특히 성폭력의 가능성을 내포한 말들은 개인의 의견이자 성향으로 치부될 뿐 어떤 사회문화적 특성을 포착해내기 어렵다. 노블과 페레스의 책을 읽으면서 연구힌트를 얻어보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역시 이 남성화된, 잉여화된 언어에서 어떻게 유의미한 현상을 포착할 수 있는지는 아직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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